[미트러버뉴스=고현진 기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얼큰한 국물에 큼지막한 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간 육개장이다. 오랜 세월 우리 식탁에서 사랑받아온 이 보양식은 이름 그대로 소고기를 넣어 끓인 개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고기, 즉 개고기를 사용한 개장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소는 농경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함부로 잡을 수 없었기에 소고기는 서민의 식탁에 오르기 힘든 귀한 재료였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바로 구하기 쉬웠던 개고기였다. 특히 개장은 개고기를 푹 삶아 만든 국물 요리로, 삼복더위에 원기를 회복하는 대표적인 보신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당시 모든 이가 개고기 식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의 문집 『임하필기』에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기록돼 있다. 장단의 유지였던 이종성은 어느 잔치에 참석했다가 상에 오른 개장을 보고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이 아니다”라며 젓가락을 들지 않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이는 당대에도 개고기 식용에 불편함을 느낀 지식인층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와 음식 문화도 자연스럽게 변했다. 조선 말기와 근대에 접어들며 축산업이 발달하고 소고기 유통이 활발해지자, 이전의 개장 조리법에 주재료만 소고기를 사용한 새로운 요리가 등장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육개장이다. 이름도 개장에 소고기를 뜻하는 육을 붙여 육개장이라 불리게 됐다.
육개장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 초반이었다. 1929년 근현대 잡지 『별건곤』은 육개장을 “조선인의 특수한 입맛에 맞춰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끓인 시뻘건 장국”이라고 묘사했다. 이는 육개장의 핵심인 소고기, 매운 고춧가루, 붉은 국물이 이미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육개장이 점차 대중화되면서 개장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결국 이름에만 ‘개’라는 흔적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이처럼 육개장은 단순한 보양식을 넘어 조선 시대의 경제 구조, 식재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근대 이후 한국인의 미각 형성 과정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물이다.
오늘날 우리는 육개장을 한 그릇의 든든한 국밥으로 즐기지만, 그 속에는 오랜 시간 변모해 온 민족의 음식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육개장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